왜 우리는 축하를 ‘돈’으로 하게 되었을까?
결혼식, 돌잔치, 환갑연, 장례식 등 경조사에 갈 때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현금을 준비합니다. 현금으로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성의를 표현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죠. 하지만 문득 궁금해집니다. 도대체, 왜 우리는 현금으로 마음을 전하게 된 것일까요? 오늘날 축의금 문화는 또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요? 2026년 현재, 축의금 문화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며 빠르게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5만 원으로는 조금 부족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축의금 플레이션’ 시대에 접어든 것이죠.
조선시대 위시리스트는 ‘이것’
사실 우리나라도 원래는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였습니다. 그것도 생각보다 호사스럽고 복잡다단하게 말이죠. 조선 중기의 문신 유희춘이 남긴 『미암일기』를 보면 양반들끼리 어떤 선물을 주고받았는지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흔했던 것은 술과 과일, 그리고 김이었습니다. 곶감도 자주 선물했죠. 맛있는 것을 공유하는 차원의 선물이 일반적이었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미식의 대표주자는 술이나 과일 혹은 별미류였습니다. 특별한 선물로는 전복이나 숭어, 오징어, 가물치 같은 수산물이었고요. 숭어와 농어는 말려서 선물로 주기도 했다고 해요.
유희춘의 경우는 활동했던 곳,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강진, 영광, 진도, 무안 등 해안지역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수산물을 얻고 나누기에 용이했을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수산물이 지금보다 구하기 어려웠다는 점, 운반이나 보관도 훨씬 까다로웠을 것을 생각한다면 당시 수산물은 홍삼세트나 갈비세트처럼 귀한 선물이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정성스러운 위시리스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물품을 통한 정성 어린 마음 전달이 축의금 문화의 전신이었던 셈입니다.
축의금의 시작은 율곡 이이?
현금 축의금 문화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흥미로운 인물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율곡 이이 선생인데요. 『율곡전서』 권16, 잡저, 해주향약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경사(慶事)에 기증할 때는 예(禮)의 크고 작은 데 따라 예물의 다소(多少)를 정하는데, 많으면 무명 다섯 필과 쌀 열 말, 그 다음은 무명 세 필과 쌀 다섯 말이며, 적으면 무명 한 필과 쌀 세 말로 한다. 대과(大科) 급제와 같은 경우가 대례(大禮)이고 생원⋅진사가 그 다음이며, 그 나머지 아들의 관례(冠禮)나 처음 하는 벼슬, 품계가 오르는 따위가 소례(小禮)이다. 혼례에는 무명 세 필과 쌀 다섯 말을 부조한다.”
이 글은 율곡 이이가 쓴 『해주향약』에 나오는 내용으로, 마을 사람들이 지켜야 할 유교 윤리를 담고 있습니다. 율곡 이이는 유교적인 가치관을 일반 백성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정리했고, 마을 공동체에서 그 가치를 함께 지키며 살 수 있도록 글을 썼죠. 이 글에서 그는 축의금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혼례에는 무명 세 필, 쌀 다섯 말 정도를 하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서로 간에 많은 현물을 주고받았지만, 때로는 선물이 뇌물로 둔갑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누군가의 결혼을 축하한다며 과도한 선물을 보내 환심을 사는 것이죠. 율곡 이이는 이를 경계하고 적당한 수준에서 축하할 것을 권고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무명과 쌀이 화폐로 쓰였다는 점입니다. 조선은 18세기 이전까지 화폐 경제가 활발하지 않았고, 옷감으로 쓰는 무명과 식생활의 기본인 쌀을 가지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했습니다. 이 금액의 가치를 오늘날 기준으로 환산하기는 극히 어렵지만, 조선 전기 토질이 나쁜 토지에서 내는 세금의 양이 쌀 4~6말 정도였고, 당시 최고 부자들이 수만 필의 무명을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를 두고 느끼는 우리의 감정과 비슷한 수준이었을 겁니다.
이런 부분을 고려한다면, 율곡 이이를 축의금 문화의 원조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화려하고 비싼 선물을 통해 재력을 과시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금액을 나눔으로 공동체의 화목을 도모하자는 발상이었으니 말입니다.
농촌은 선물, 도시는 현금
조선 말기 그리고 일제강점기 들어 선물 대신 결혼 축의금 문화가 시작됩니다. 화폐 경제가 성장하고, 도시화와 산업화가 조금씩 진척되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선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1960년대만 하더라도 마을 잔치가 빈번했고 결혼식에는 다양한 형태의 선물이 전해졌습니다.
경북 영양군에 있는 감천마을의 경우 ‘몸부조’라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잔치 음식을 만들거나 밥상이나 술상을 차릴 때 함께 도와주며 선물을 대신하는 문화였죠. 젊은 남성들은 가축을 잡고, 나이가 많은 여성들은 음식 맛을 내는 식이었어요.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농촌에서 결혼식을 하면 쌀밥을 대접하지 못해서 국수를 대접하기도 했고, 술이나 감주 같이 마실 거리를 손님들이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양말, 내의, 런닝, 셔츠 같이 소박하지만 마음을 담은 선물도 전했죠.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의 정성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시는 달랐습니다. 도시에서는 빠르게 축의금 문화가 정착했고, 선물은 사회적 소수, 가진 자들의 문화로 바뀌어갔습니다. 한국의 혼인 문화는 결혼에 드는 물품과 비용인 ‘혼수’가 핵심이었죠. 신부와 신랑이 결혼식 전 과정에서 엄청난 혼수를 준비했습니다. 신랑신부의 화려한 의상부터, 양가 부모님께 보내는 물품, 화려한 피로연 등 도시 결혼식에서 선물 문화는 재력을 과시하는 특권층의 문화와 결부되었습니다.
축의금 주고 받으면 벌금 50만 원?
이러한 과도한 허례허식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나선 적도 있습니다. 1969년, ‘가정의례준칙’이 만들어졌죠. 쉽게 말하면 결혼식에 허례허식을 없애고 낭비를 최소화할 것을 나라 차원에서 강제한 것입니다. 일종의 사치금지법이었는데, 내용이 꽤 구체적이었어요. 약혼식과 청첩장을 없애고, 결혼 답례품은 주지 않고, 신랑신부 접수대를 없애서 축의금을 주고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또한 폐백과 화환도 없애고자 했죠.
심지어 청첩장을 돌리거나, 답례품을 주거나, 주류와 음식물 접대 등의 행위를 하면 5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기기도 했습니다. 196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정서가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나라님도 못하는 일이 있는 법. 정부가 강제한 준칙들은 일반 국민들의 일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또한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화 예식을 누렸고, 결국 가정의례준칙은 1999년 폐지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는 한국의 축의금 문화가 제도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었음을 보여줍니다.
빠른 속도로 변화한 축의금 문화
1980년대 이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득 수준이 증가하고, 도시화가 진척되면서 서구적인 생활 양식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인구가 증가하고 그만큼 결혼식이 늘면서 1990년대 이후 현금 축의금 문화는 완연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고 사회적 고민도 함께 시작됩니다. 매년 봄이 되면 적정 축의금에 대한 설문조사나 기사가 쏟아지고, 거액의 축의금을 자녀에게 줄 경우 증여세 과세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첫날밤에 축의금을 이야기하면서 부부싸움을 벌이는 내용이 드라마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현금 축의금은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결혼 문화에서 공고한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시간이 흐르며 차곡차곡 ‘몸값’도 올라만 갔습니다. 잘 살게 된 만큼 챙겨야 할 정성의 액수 또한 높아진 것이죠.
‘축의금 플레이션’, 5만 원 시대는 옛말
최근 몇 년간 결혼식 풍경에서 가장 크게 변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축의금의 액수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5만 원’이 국룰처럼 여겨졌던 시대는 이제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물가 상승과 고가의 웨딩홀 식대가 맞물리면서 ‘축의금 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죠. 2025년과 2026년 최신 자료들을 보면 이러한 변화가 더욱 확연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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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축의금의 상승: NH농협은행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식 평균 축의금은 11만 7천원으로, 2년 새 약 7%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또한 카카오페이가 2025년 송금 데이터를 분석한 ‘2025 머니리포트’에서도 축의금 평균 송금액이 처음으로 10만 원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2019년 평균 5만 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5년 만에 두 배로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2026년에도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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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결혼식 식대: 이러한 축의금 상승의 주된 원인은 단연 결혼식 식대입니다. 특히 서울 시내 웨딩홀의 평균 식대는 2024년 8만 원 안팎이었던 것에 비해 2025년과 2026년에는 더 올랐습니다. 2025년 12월 기준 서울 강남권 결혼식장의 1인당 평균 식대는 처음으로 9만 원대에 진입했으며, 2026년 2월에는 서울 강남권 평균 식대가 9만 6천원까지 치솟았습니다. 코스식의 경우 1인당 평균 11만 9천원인 곳도 많습니다. 내가 먹는 밥값보다는 더 내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만큼, 참석하는 하객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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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별 차등화된 축의금: 이제는 참석 여부와 관계의 깊이에 따라 축의금 액수에 차등을 두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한 설문조사(신한은행 ‘보통사람 금융생활보고서 2024’)에 따르면 축의금만 보내는 경우는 5만 원이 52.8%로 가장 많았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경우는 10만 원을 내는 경우가 67.4%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2025년 직장인 대상 설문에서는 직장 동료 결혼식 참석 시 적정 축의금으로 10만 원을 꼽는 비율이 60%를 넘어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2026년에도 지속되고 있으며, 특히 친밀도에 따른 금액 차이가 더욱 명확해지는 추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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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축의금 가이드라인 (관계별): 2026년 최신 축의금 가이드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기준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 매우 절친한 친구 (찐친, 카톡 최상단): 30만 원 이상
- 초중고 절친 / 부모님과 안면 있는 사이: 20만 원
- 사적으로 친한 친구/동료 (주기적으로 만나는 사이): 10만 원 ~ 20만 원
- 같은 팀 동료 / 분기 1회 만남: 10만 원
- 인사만 하는 동료 / 얼굴만 아는 회사 동료, 먼 친척: 5만 원
- 모바일 청첩장만 받은 경우 (불참): 0원 또는 5만 원
특히 서울 강남 지역의 고가 웨딩홀 예식에 참석할 경우, 기본 금액에서 5만 원 정도를 상향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인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최근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이 가이드라인을 참고하여 축의금을 준비했는데, 특히 식대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라 조금 더 성의를 표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인 물가 상승 앞에서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한때는 선물 문화가 당연했던 시대도 있었지만, 어느덧 결혼에서 선물은 부수적인 것, 혹은 정말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별도로 준비하는 예외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선물이 따뜻하고, 돈은 차갑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모바일 송금(카카오페이, 토스 등)이나 기프티콘 형태로 축의금을 전달하는 문화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모바일로 축의금을 보낼 때가 많습니다. 편리함과 신속함은 물론, 받는 사람도 계좌 이체로 바로 확인할 수 있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은 현금으로 결혼을 축하하는 문화가 일반적입니다. 불가리아·루마니아·폴란드 같은 동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 선물 문화로 유명한 미국 역시 2000년대 들어 갈수록 현금 축의금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세계사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현금은 결혼을 축하하는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서고 있는 셈입니다.
축하할 일이 유난히 많은 계절, 한 번쯤 고민해 봅시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금액의 크고 작음을 넘어 어떻게 하면 깊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말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진심 어린 축하이니 말입니다. 2026년 현재, 이러한 축의금 문화의 변화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축하를 전하는 방법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