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026년 4월 29일 KBS1 ‘황신혜의 같이 삽시다’ 방송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동시에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다시 한번 직시하게 했습니다. 배우 권오중 씨가 희귀병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 권혁준 씨가 중학교 시절 1년 동안 겪었던 끔찍한 학교 폭력 피해를 고백하며 흘린 눈물은 단순한 연예인 가족의 사연을 넘어, 우리 사회의 학교폭력 처리 제도가 얼마나 허술하고 무력한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 방송을 보며 저 역시 깊은 충격과 함께, 과연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안전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권오중 씨의 고백은 한 아버지의 아픔을 넘어,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특히 신체적, 발달적으로 취약한 아이들이 학교 폭력의 주요 표적이 되는 현실은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학교폭력 처리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희귀병 아들에게 가해진 끔찍한 학폭, 1년간 숨겨진 진실
권혁준 씨는 전 세계에 10명 남짓밖에 없는 초희귀 유전자 질환인 ‘MICU1’을 앓고 있습니다. 이는 미토콘드리아 칼슘 수용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다리 근력 저하와 보행 어려움 등의 발달장애를 동반합니다. 한국에서는 혁준 씨가 첫 번째 사례일 정도로 희귀한 병이라고 합니다. 그런 아이가 중학교 1학년 시절, 약 1년간 5명의 학생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경악스럽기까지 합니다. 상상만으로도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죠.
권오중 씨의 고백은 듣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친한 척 가장해서 화장실 가면 몽둥이로 때리고, 기어 다니라고 하고”라며 아들이 겪었던 고통을 전하며 그는 끝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잔혹한 폭력이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외부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처음 아들이 배를 맞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권오중 씨는 가해 학생을 직접 만나 확인했지만, 그 아이는 능숙하게 거짓말을 했고, 권오중 씨는 오히려 아들을 다그쳤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부모가 공감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가 거짓말을 할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피해 아동이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가해 아동의 능숙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저 역시 부모로서 이런 상황에 놓인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피해가 드러나지 않은 데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 혁준 씨 본인은 아버지가 유명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신이 겪는 일을 말하기 어려워했습니다. 혹시라도 아버지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했던 어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 권오중 씨 역시 연예인이라는 직업 때문에 강하게 나서기 어려웠다는 후회를 털어놓았습니다.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자녀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요?
* 무엇보다 가해 학생의 거짓말을 믿고 아들을 혼냈던 것이 신고를 더욱 늦추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는 피해 아동의 진술을 경청하고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
결국 혁준 씨의 목에 유리 파편이 박히는 심각한 부상이 발생하고, 학교 측의 연락을 받은 뒤에야 경찰이 출동하며 비로소 1년 동안 숨겨져 있던 끔찍한 진실이 밝혀지게 됩니다. 신체적, 발달적으로 취약한 아이들이 오히려 학교 폭력의 주요 표적이 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이 아이들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어렵고, 피해 사실을 알리는 데도 더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가해 조치와 제도의 허점: ‘자발적 전학’과 2차 가해의 굴레
사건이 드러난 후의 조치 과정은 더욱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권오중 씨는 “주범은 전학을 갔다”고 밝혔지만, 여기서 우리 학교폭력 처리 제도의 핵심적인 허점이 드러납니다. 바로 ‘자발적 전학’입니다. 학폭심의위원회(학폭위)의 강제 전학 조치가 아닌 가해 학생이 스스로 전학을 선택할 경우, 학교생활기록부에 학폭 관련 기재가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는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고 새 학교에서 아무런 기록 없이 생활할 수 있는 면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습니다. 정말이지, 가해자가 처벌을 회피할 수 있는 이런 제도의 맹점은 시급히 보완되어야 합니다.
주동자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의 가해 학생들은 ‘반 교체’ 조치에 그쳤습니다. 권오중 씨는 “다른 가해자 4명은 반만 교체됐다. 그러면 아이들이 ‘옆에 가지 마. 신고당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안 달라진다. 정말 잔인하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실제로 반이 바뀐 뒤에도 같은 학년에서 혁준 씨를 향한 “저 애 옆에 가지 마. 신고당한다”는 식의 2차 따돌림이 이어졌습니다. 피해 학생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고통받고, 가해 학생들은 미미한 처벌과 함께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현실은 학교폭력 처리 제도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국 혁준 씨는 중학교를 마치고 다른 지역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야만 했습니다. 피해자가 학교를 떠나야 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왜 피해자가 도망치듯 학교를 떠나야 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우리 사회는 답해야 합니다.
“학폭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죽인다” 권오중의 절규
권오중 씨가 방송에서 흘린 눈물은 단순히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 학교 폭력 피해 가족이 겪는 깊은 상처를 대변했습니다. 그는 “학폭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죽인다”는 말을 남기며, 다른 부모들처럼 강하게 대응하지 못해 아들이 늘 ‘자기 편이 없는’ 느낌을 받았을까 봐 후회한다고 토로했습니다. 이 고백은 많은 학폭 피해 부모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도, 사회적 시선이나 제도적 한계로 인해 강하게 나서기 어려운 현실, 그 간극이 주는 상처는 상상 이상으로 클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찢어지고, 아이는 홀로 고통받는 상황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픔을 넘어 작가로 성장한 권혁준 씨의 빛나는 현재
다행히도 권혁준 씨는 아픔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나섰습니다. 현재 27세가 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권오중 씨는 아들이 대학 졸업 후 할 일이 없어 막막해하던 중 그림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많은 화실에서 발달장애 아들을 거부했지만, 마지막으로 물어본 화실에서 아들을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혁준 씨가 그린 작품들은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판매와 함께 예술의전당 전시, 시애틀, 뉴욕 등 해외 전시 초청까지 이어졌습니다. 학폭의 상처와 희귀병의 고통을 안고도 빛나는 재능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혁준 씨의 모습은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며,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신체적 장애는 여전하지만, 정서적으로 안정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은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혁준 씨의 이야기는 고통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지만, 동시에 이러한 희망이 온전히 개인의 노력과 가족의 헌신에만 의존해야 한다는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권혁준 씨 사례가 드러낸 학교폭력 처리 제도의 세 가지 구조적 허점
권혁준 씨의 사례는 우리 학교폭력 처리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세 가지 측면에서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 허점들을 제대로 직시하고 개선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권혁준 씨가 계속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첫째, ‘자발적 전학’이라는 면피 구조입니다.
가해자가 학폭위의 강제 전학 조치가 아닌 스스로 전학을 선택할 경우, 학교생활기록부에 학폭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이는 가해자가 처벌의 흔적 없이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며,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 없는 학교에 홀로 남아 심리적 고통을 받는 역설적인 상황을 초래합니다. 피해자 보호보다는 가해자의 편의를 더 봐주는 듯한 이 구조는 시급히 개선되어야 합니다.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뿐입니다. 이 제도는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2차 가해에 대한 사후 관리 부재입니다.
가해자들이 단순 반 교체 후에도 “저 애 옆에 가지 마”와 같은 언어적, 심리적 2차 따돌림을 이어갔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학교는 가해 학생들에 대한 단순한 물리적 분리 조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재교육과 함께 피해 학생에 대한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합니다. 현재의 제도는 2차 가해를 막는 데 매우 미흡하며, 피해 학생이 학교생활을 안전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보호 장치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물리적인 폭력만큼이나 심리적인 따돌림과 배제는 피해 학생에게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학교는 이러한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더욱 강력한 의지와 구체적인 매뉴얼을 갖춰야 합니다.
셋째, 발달장애·희귀병 학생에 대한 보호 체계 미흡입니다.
신체적, 발달적으로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학교 폭력에 더욱 취약합니다. 혁준 씨처럼 희귀병을 앓는 아이가 신체적 약점을 표적 삼아 집단 폭행을 당한 것은 우리 사회가 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들에 대한 선제적인 보호 장치 마련, 교사들의 특수 학생에 대한 이해와 관심 증진, 그리고 맞춤형 학교 폭력 예방 교육이 절실합니다. 취약계층 학생들에 대한 더욱 강화된 보호 시스템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특수 교육 대상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지원과 교사들의 역량 강화가 시급합니다.
해외 사례를 통해 본 학교폭력 처리 제도 개선 방안
다른 나라들은 학교폭력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을까요? 해외 사례를 통해 우리 학교폭력 처리 제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 핀란드는 ‘KiVa 프로그램’을 통해 학폭 발생 후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심리 개입을 병행합니다. 단순 징계가 아닌 공감 능력 훈련과 행동 수정 프로그램을 가해자에게 제공하며, 학폭 재발 방지를 학교 전체 차원의 과제로 다룹니다. 이는 가해자 교화와 학교 공동체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가해 학생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변화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일본은 ‘이지메 방지대책추진법’에 따라 발달장애·신체장애 학생에 대한 학폭을 특별히 엄중히 다루고 있습니다. 피해 학생이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 조성 의무를 학교에 부과하며, 장애 학생을 위한 맞춤형 보호 조치에 더욱 신경 쓰고 있습니다. 취약계층 학생 보호에 대한 명확한 법적 의무 부여는 우리도 참고할 만한 부분입니다. 법적 근거가 명확해야 학교와 교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역시 학교폭력예방법 개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자발적 전학의 허점과 피해자의 2차 피해 방지 체계는 여전히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권오중 씨의 눈물 고백은 이 제도적 허점들을 보완하고 더욱 강력한 피해자 중심의 학교폭력 처리 제도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제는 말뿐인 개선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때입니다.
더 이상 눈물 흘리는 피해자가 없도록: 학교폭력 처리 제도의 변화를 촉구하며
권오중 씨가 방송에서 흘린 눈물은 한 아버지의 개인적인 아픔을 넘어, 우리 사회 전체가 직면한 학교 폭력 문제의 민낯을 보여주었습니다. 희귀병을 가진 아이를 향한 계획적 집단 폭행, 거짓말로 무마하려는 가해자, 자발적 전학으로 기록을 피하는 구조, 그리고 반 교체 후 이어지는 2차 따돌림까지 — 이 모든 것이 현재 우리 학교폭력 처리 제도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혁준 씨가 그림을 통해 아픔을 극복하고 미술 작가로 우뚝 선 것은 분명 희망적인 소식입니다. 하지만 그 회복이 온전히 가족의 헌신과 혁준 씨 개인의 힘만으로 이뤄져야 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깊이 반성해야 할 지점입니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책임지고 변화하며, 모든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지금 우리는 학교폭력 처리 제도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바꿔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우리 아이들이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그리고 그 부모들이 절규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사회 전체가 나서서 이 문제 해결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합니다.



















